타인의 해석(연재중)

슬슬 창밖의 뿌옇게 밝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잠시 봤던 잠이 들깬 밤바다 한가운데 해무처럼 창문에 어른거리는 무늬가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섬세한 사람일까. 마치 여자 친구처럼 조목조목 말을 잘했다. 약속을 어긴 것은 간데없고 내 안위를 걱정해 주는 자체가 미안했다...

화려한 원색의 장미꽃이 수놓인 브래지어가 화면 가득히 떴다. 저 브래지어를 착용하면 처진 가슴이 열일 곱살 소녀의 풋풋한 가슴처럼 위로 바짝 당겨준다나? M사의 풍선처럼...

옴짝달싹 못하는 지점까지 밀어붙이는 대화가 가끔은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승희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마치 내가 질질 끌려가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떨 땐 지은 죄도 없이...

나는 외출복을 입은 그대로 소파에 누워버렸다. 손가락 까딱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피곤했지만 누운 채로 휴대폰을 열었다.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가 떴다. 나는 잠시 갈등을 하다가..

장편소설(연재중)/<타인의 해석>25/이도은

어쩌다 내 뒤통수에 대고 그들이 '강샘' '깡다구', 뭐, 이딴 별명으로 수근덕거리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난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철저히 하고 야무지게...

조금 센 척해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은 것처럼 눈초리를 한껏 치켜올렸다. 눈을 크게 뜨고 거울 속에 비친 여자를 보니 생각보다 세 보이진 않았다...

책 속에서 온종일 동네를 쏘다니는 좀머 씨처럼 나도 모든 것을 잊은 채 거리를 쏘다니며 아무 데도 돌아가지 않아도 좋은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나는 다시 일어서려다 주저앉았다. 그래, 오늘이 일대일 마지막 날이야, 오늘만 참자,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는 워낙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면접도 보고 학부형 상담도 하고...

대답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초리가 살짝 떨렸다. 타인에게 저토록 저돌적인 질문은 처음인 것 같았다. 금방 대답할 수 없는 뭔가 질문의 답을 노리는 무거운 질문임에 틀림...